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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베이비 시대의 도래, 기술 발전에 앞선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밥먹자용 2024. 5. 10. 21:41

 

 

 

유전공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류는 이제 자신이 원하는 유전형질을 가진 아이, 이른바 '디자이너 베이비'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CRISPR-Cas9으로 대표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배아의 유전체를 정교하게 편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과거 유전병 치료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능, 외모, 운동능력 등 부모가 원하는 형질을 자녀에게 갖게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2018년 중국의 한 과학자는 HIV에 면역력을 가진 아기를 유전자 편집으로 탄생시켰다고 발표해 전 세계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해당 과학자는 중국 정부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는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도 디자이너 베이비 제작이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사회적 논의와 합의, 규제 장치는 한참 뒤쳐져 있다는 점이다. 디자이너 베이비가 초래할 생명윤리적, 사회경제적 파장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상황이다.

 

먼저 인간 존엄성 훼손의 우려를 들 수 있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태어난 아이는 자연적 존재라기보다 부모의 욕망에 따라 설계되고 프로그래밍 된 존재에 가깝다.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주체성과 고유성이 인정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유전자 개량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해 유전적 계급화가 심화될 수 있다. 현재의 기술로는 고비용이 소요되어 부유층만이 디자이너 베이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전자 치료제의 연간 비용은 평균 75만 달러에 달한다. 유전자 편집이 대중화되더라도 상당 기간 동안은 경제력에 따른 접근성의 격차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게다가 유전자는 하나의 형질만 결정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낮추는 유전자가 학습능력 저하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특정 질병을 막기 위해 편집한 유전자가 오히려 다른 영역에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디자이너 베이비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와 규범 정립이 시급하다. 국제적으로 조율된 공통의 가이드라인과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생명윤리위원회(IBC)는 2015년 '인간 유전체 편집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생식세포 유전자 편집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 체결을 제안한 바 있다.

 

 

각국 정부 차원에서도 제도적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배아 유전자 편집에 대해서는 의학적 필요에 따른 제한적 허용이 바람직해 보인다. 영국은 2015년 세계 최초로 질병 치료 목적의 배아 편집을 승인했으며, 2022년에는 유전병 예방을 위한 배아 선별을 허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폭넓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 디자이너 베이비 시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건강한 미래상을 함께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과학계, 의료계, 법조계,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윤리적 기준과 규제의 내용, 제도적 장치 등을 두고 열린 소통과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기술혁신과 생명윤리의 조화로운 접점을 모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디자이너 베이비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우리의 준비 여하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기술발전에 앞서 인류 보편의 가치와 윤리를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과학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사회의 성찰과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